Biography_나의_꿈

유치원 시절부터 내 꿈은 과학자였다. 책에서 TV에서 보는 과학 실험들이 어린 내 눈에는 너무 신기헤보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학습만화의 최전성기였으며 거의 모든 아이들은 대통령 아니면 과학자를 꿈꿨다. 나는 특히 그랬다. 초등학교에 올라가서도 특별활동은 과학과 관련된 활동을 신청하고 도서관에 가면 과학동아만 봤다. 과천 과학관은 나에게 놀이동산이었다. 중학생이 된 후 방과후에 실험 활동을 하는게 너무 부러워서 무작정 영재반을 신청해 들어갔다.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내가 왜 과학자가 되지 않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물론 내가 과학자의 꿈을 잠시 내려놨었던 이유는 있다. 그것은 바로 수학.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수학이 내 발목을 잡았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수학이 어려웠던건 아니다.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수학 시험이 어려웠다. 고등학교 내신 수학시험은 무조건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풀어야한다. 근데 난 수학 문제를 빠르게 풀 수 없었다. 난 항상 계산이 느렸고 가끔 틀리기도 해서 처음부터 다시 계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학교까지는 문제가 어렵지 않아서 상관 없었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나니 문제가 되었다. 그때부터 난 수학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난 정말 수학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난 문과를 선택했다.

문과에 진학한 후 내가 다시 선택한 장래희망은 드라마 작가. 나는 정말 드라마를 좋아했다.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선덕여왕이다. 선덕여왕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끝까지 본 드라마이다. 선덕여왕은 연기, 연출, 음악 모두 너무 완벽했다. 이런 드라마를 내가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드라마작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작가가 되려면 글을 잘 써야되겠지 싶어서 여러 백일장에 나갔다. 솔직히 드라마 극본이랑은 상관없었다. 나는 주로 백일장에서 시를 썼다. 그런데 웬걸 나는 꽤 많은 상을 받았다. 전국 대회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다. 이쯤되니 부모님도 내 꿈을 지지해줬다. 하지만 그 꿈도 오래가지 못했다. 상을 많이 받았던 것은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얼마지나지 않아 상을 도통 받지 못하게 됐다. 물론 상을 받는게 당연한 일은 아니지만 상을 잘 받다가 갑자기 장려상도 못받는 사람이 되니 당황스러웠다. 큰 상을 받는 아이들은 대부분 예고 학생들이었고 수상작들을 보니 내 글은 너무 초라했다. 나는 그 애들의 시를 따라 써보려고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쓰고 복잡한 문장을 써봤지만 조잡했다. 나는 그 때 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다.

고3이 되자 나는 그냥 공부에 집중했다. 꼭 지금 글을 잘써야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이 되도 계속 글은 쓸 수 있다. 그게 내 생각이었다. 그래도 나는 공부를 잘하는 쪽에 속하는 학생이었기에 이왕 대학교 갈 거 좋은 대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고3이 되니 갑자기 성적이 급격히 좋아졌다. 당시 내 목표대학은 중앙대나 경희대였는데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너는 무조건 SKY를 가야하는 성적이라고 말해주셨다. 내가 스카이에 갈 수 있다고? 진짜 놀랐다. 근데 담임선생님이 믿어주시니 갑자기 의지가 생겼다. 그때부터 목표는 무조건 SKY였다. 그때부터 성적도 계속 좋았고 공부도 순조로웠다. 야간 자율학습이 재밌었다. 모의고사 성적은 거의 1등급이었다. 하지만 SKY에 진학하는건 실패했다. 내 2015학년도 수능성적은 국어 1등급, 수학 2등급, 영어 3등급이었다. 낮은 성적은 아니다. SKY는 택도 없을뿐.

그리고 시작된 재수생활. 원래 내 목표였던 중앙대나 경희대는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막상 SKY가 목표가 되니 성적이 아까웠다. 부모님도 내 선택을 지지해주셔서 재수학원에 들어갔다. 분당청솔학원. 내 지난 수능성적표를 제출하면 학원비를 크게 깎아 주는 제도가 있어서 선택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재수생활도 재미있었다. 아무 걱정없이 공부만 하면 되었으니까 좋았다. 친구들끼리도 항상 공부 얘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난 성적이 더 좋아졌다. 모의고사에서 학원 내 1등도 해봤다.이왕 재수하는거 이번 목표는 SKY도 아니고 서울대였다. 서울대를 목표로 처음으로 한국사도 배우고 제2 외국어로 아랍어도 배웠다. 대망의 16년도 수능. 나는 국어 2등급 수학 1등급 영어 1등급을 맞았다. 한국사는 딱 한 문제만 틀렸는데 2등급이었다. 서울대의 원하는 학과를 가기 위해선 조금 애매한 성적. 그런데 의외로 대박은 논술에서 났다. 나는 수시 논술전형으로 연세대 경영학과, 고려대 경영학과, 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에 모두 합격했다. 정말 하나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 놀랐다. 그리고 난 연세대를 선택했다. 과연 내가 수시합격하지 않았다면 어느 학교를 갈 수 있었을까 궁금하긴 하다.

왜 난 데이터 과학을 선택했는가

내가 수시 지원을 할 때 모든 원서를 경영학과로 지원했다. 경영학을 배우고 싶어서 지원한 것은 아니고 조금이라도 경쟁률을 낮출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뽑는 인원 수가 큰 학과를 고른 것이다. 경영학과는 거의 200~300명을 뽑으니 경쟁률도 비교적 낮았다. 그렇게 야심차게 시작한 대학생활. 처음엔 좋았다. 마음대로 배우고 싶은 과목을 고를 수 있는 수강신청 제도, 부모님이 잔소리할 수 없는 대학교 기숙사, 너무너무 다 좋았다. 그런데 점점 외로워졌다. 다른 친구들이 나를 피했는지 내가 그들을 피했는지 모르겠지만 친해질 수 없었다. 동기들과 대화를 하면 거리감이 느껴졌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느낌. 겉으로는 나와 친해지고 싶다고하면서 속으로는 나를 흉보는 느낌. 진짜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그냥 내 느낌은 그랬다. 성적도 같이 떨어졌다. 동아리, 학회라도 가입해서 다른 친구들이라도 사귀고 싶었지만 내가 신청한 동아리들은 면접까지 봐서 나를 떨어트렸다. 참나 동아리 한번 하자는데 면접? 이런 생각도 들고 왜 남들은 다 한다는 동아리 활동 나만 못할까? 이런생각도 들었다. 혼자가 되니 공부도 하기 귀찮아졌다. 난 고등학교때도 재수학원때도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친구가 없으니 공부도 하기 싫어졌다.

경영학이 너무너무 싫어진 그때, 대학교 3학년 난 다시 새 목표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목표는 데이터 분석가. 데이터 분석가를 선택한 계기는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전공수업이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다. 데이터 분석은 너무나도 외로웠던 나와 친구가 되어줬다. 코드 몇줄로 이게 예측되다니? 내가 이런 코드를 내 손으로 직접 쓸 수 있다니? 그저 너무 신기했다. 데이터 분석가를 결심한 그날로 나는 데이터 분석가가 되려면 뭘 준비해야하는지 인터넷에 검색했다. 데이터 분석가가 되려면 통계학과 python을 잘 알아야하고 대학원 진학이 필수란다. 나는 통계학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무작정 통계학과 python 책을 사서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공부방이 있었는데 매일같이 출석해서 책을 보고 노트를 빼곡히 채웠다. 책을 다 떼고 난 후에는 너무 뿌듯했다. 학교에선 미적분, 컴퓨터와 자료처리, 선형대수 같은 통계학 과목들을 수강했는데 모두 좋은 성적을 받았다. 진심으로 좋아서 공부한 결과였다.

대학원 입학, 졸업, 이제 남은 건?

그리고 난 연세대 대학원 디지털애널리틱스학과에 진학했다. 원래 목표는 통계학 대학원이었지만 1년 공부한 통계학 실력으로 통계학 대학원까지 입학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디지털애널리틱스학과는 여러 학과 출신 학생들을 골고루 뽑는다기에 지원했다. 대학원 생활은 대체로 좋았다. 제일 귀중한 경험은 현대자동차 산학협력에 참여한 것이다. 그런 대기업 구경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프로젝트로 몇번 드나들고 나니 진짜 사원이 된 것 같았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공채 지원 권유도 받았다. 물론 나는 떨어졌다(...)

대학원 생활에 문제가 있었다면 코로나 19. 내 대학원 생활은 거의 집이었다. 학교를 갈 일이 없었다. 모든 수업은 비대면 수업인데다가 학교와 집 사이의 거리는 왕복 4시간 거리. 황당했다. 나는 기숙사까지 신청했는데 대학원 생활은 물거품이 되었다. 대학원 동기들과도 별로 친해지지 못했다. 만난 일도 별로 없는데 친해질리가 없지. 솔직히 이제까지 대학교+대학원 생활이 너무 억울하다. 나는 계속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런 일 저런 일로 친구를 많이 못사귄거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참... 이게 내 팔자인가 싶다.

아무튼 그렇게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는 취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순진한 마음으로 현대자동차 취직될 줄 알았다. 그래서 바보같이 준비도 안했다. 나는 python이랑 SQL밖에 못하는데 공고에 적힌 요구사항들은 외계어같다. 하둡? 들어만봤다. 일개 대학원생이 분산처리가 필요할 만큼의 대량의 데이터를 다룰 일이 있을리가. 깃허브? 나는 프로그래머들만 쓰는 플랫폼인줄 알았다. 데이터 엔지니어? 데이터 서비스 개발? 이게 다 뭔 소리야. 난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냥 학교 공부만 따라가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기업들은 슈퍼맨을 원한다. 다 잘해야된다는 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 요구에 맞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지금 시각은 2021년 11월 2일. 8월 말에 석사를 수료하고 2달 정도가 지났다. 난 또 도전하련다. 내가 과학자를 꿈꿨을 때 처럼, 드라마 작가를 꿈꿨을 때 처럼, SKY를 꿈꿨을 때 처럼, 서울대를 꿈꿨을 때 처럼, 대학원을 꿈꿨을 때 처럼... 아무튼 다시 시작이다. 이 블로그는 내 새로운 도전의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먼 훗날에 이 글을 다시 봤을 때, 내가 정말 훌륭한 데이터 과학자가 되어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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